담배에 대한 단상
아버지는 애연가셨다.
언제부터인지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오랜기간 담배를 즐겨오셨던것 같다. (지금은 상상조차 안되지만) 어릴적엔 방에 재떨이가 있었고 퇴근하고 벽에 기대 티비를 보시며 담배를 맛있게 태우시던 기억이 난다. 어린맘에 뭐가 재밌다고 담배 필터 가까이에 실을 묶어두고 아빠 여기까지 빨리 태울수 있냐고 물었고 아빠는 연신 담배연기를 빨아들여 순식간에 그 실을 태워 철없는 아들놈 재밌게 해주시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시대는 바뀌고 금연열풍이 불고 간접흡연의 위험성이 알려지며 방에서의 끽연은 생각지도 못할 시대가 되었다. B형간염 보균자였던 아버지의 금연은 온 식구의 바람이었고 특히나 같이 지내시는 엄마에겐 꽤나 큰 스트레스 였다. 내가 한의원한다고 진도 내려온 이후에 두 분은 특히나 담배로 많이 다투셨고, 아버진 이나이 먹어서 뭔 금연이냐고 이러다 그냥 죽을란다 라는 호기로운 말씀을 자주 하셧더랬다.
그러다가 내가 결혼을 하고 지후를 낳게 될 무렵, 아기에게 담배는 좋지 않은 물질이니 외손주낳을때 금연하겠다던 약속을 친손주 때는 꼭 지키라고 하시며 와이프에게 어머니는 신신당부를 하셨다. 금연하지 않으면 아기를 보여주지도 말라고. 두분의 싸움의 근원인 담배에 넌더리가 나있던 나로서는 이제 아부지 연세에 기대수명은 10년 남짓일텐데 지금까지의 고단한 삶 이외에 남은 삶에도 스트레스를 부담시켜 드리긴 싫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담배피고 오시더라고 아기는 내어드리고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라 당부했었다. 어머니 당부에 행여나 손주를 안아보지 못할까 걱정하시던 아버지는 나의 담배 허락을 그렇게도 반겨 하셨다. 그래도 손주에 대한 걱정은 있으셨는지 꼭 샤워를 하고 냄새가 나지 않게 해서 오시곤 했었다.
얼마나 더 사시겠냐는 호기로운 생각을 누가 곡해해서 들었는지 지후가 오고 난 지 몇 달만에 아버진 암 선고를 받으셨고 그날 부로 담배는 끊으셨다.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하고 식이를 조절하면서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셨으나, 두 번의 패혈증과 간농양 때문이었을까.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까. 병원에 입원한 뒤로 영영 퇴원할 기대를 접게 되던 때가 왔다. 어느순간 다 죽어가던 환자에게 담배를 물려주니 기적처럼 살아나 3년여를 더 살다가 가셨다는 무용담과 같은 얘기가 떠오르기도 했거니와, 이제와 떠나시면 평생 즐기시던 담배를 못태우고 가시는 길이 얼마나 아쉬울까 생각에 병원에 어떻게 하면 몰래 담배를 들고 들어가 입가에 물려드릴 수 있으려나 생각했었다. 결국 실행에 옮기진 못하고 그 좋아하시던 담배를 뒤로 한채 웃는 모습으로 영정사진으로 남으셨다. 아버지는.
나중에야 전해 들은 얘기로, 아버지가 한적한 동외리 공원쪽으로 휘적휘적 올라가시길래 뭐하러 가시나 찬찬히 봤는데 여기저기 눈치를 보시더니 품에서 소중하게 한개피 꺼내어 그리도 맛나게 한 대 피시더란다. 동네 어르신 말씀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잘못 봤을거라고 잘라 말씀하셨다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잘못 본게 아니기를, 꼭 그게 아버지 이길 바랬다. 못해드린 임무?를 하나 끝낸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몰래라도 혼자 피우셨구나. 다행이다. 그래도 당신 뜻대로 하고싶은 일을 하나도 못하고 가진 않으셨구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