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유년기를 지나 지금에 내게는 어떤 한의사가 되겠느냐 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저를 괴롭힙니다. 과학이 좋아 이과로 진학했으며 수학도의 길을 걷다 금융계에 몸담고 이에 짧은 외국계 은행생활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마치고 뒤늦게 시작한 한의학의 길은 쉽게 생각하기에 너무 무겁고 직업으로 보기엔 너무 어렵습니다. 부족한 제탓이 크겠지만 아직도 아는 것은 부족하고 배울 것은 넘칩니다. 도대체 졸업해서 어떻게 환자를 보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또 부족합니다.
어떤 길을 가던지 그 길의 끝에선 최고가 되리라는 십대의 열정은 이미 삼십줄로 접어든 제게는 너무 버거운 짐입니다. 마음 한 쪽에서는 작지만 강한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최고가 최선은 아닐것이라는 달콤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느샌가 그 말은 제게 좌우명과도 같은 자기 변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테니스 클럽 사람들과 테니스를 같이 즐기고 맥주로 입가심을 하는 순간, 하루의 모든 걱정과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마약처럼 이것이 행복이라며 또 다시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소소한 삶의 재미를 알아버린 저는 이미 동물원의 늙어가는 낙타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名醫, 大醫, 富醫가 저의 목표는 아닙니다. 오는 사람 모두를 낫게 하고 신기에 가까운 경지로 절로 탄복하게 하는 실력이 저의 바람은 아닙니다. 그저 고칠 사람 고치고 못 고칠 사람은 더 나은 이로 가게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저의 깜냥을 알 수 있는 것 그것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될 제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일지도 모릅니다. 최소한의 의무만을 가진채 살고 싶다면 욕심일까요. 열정이 없는 저를 부끄러워 해야 할까요. 열정이 없는 저는 의사의 삶을 택하지 않았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엔 저마다 다른 많은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실을 제 삶에 대한 변명으로 하겠습니다. 학구열이 대단했던 저의 첫 대학에서 스무명 남짓한 저희 학년을 모아놓고 학과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모두 수학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말아라. 수학은 1%의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너희 스무명 모두가 연구직으로 남아야 할 필요는 없다. 직장을 갖고 싶으면 갖고 다른일을 하고 싶으면 해라. 너희들이 아니어도 수학은 발전해 갈 것이다. 너무 강박감에 시달리지는 말아라’ 졸업생 대다수가 진학을 하는 연구중심학교였기에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덜고자 하신 말씀이긴 하지만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아니어도 수학은 발전할 것이고 한의학 또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저는 그저 시골의 촌부로 동네 넉살좋은 터주대감 으로 늙고 싶습니다. 둘째아들 대학진학을 묻고 새로온 며느리 흉을 보는 환자들과 울고 웃으며 동네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인심좋은 한의사 선생으로 남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우리 늦둥이 감기가 허선생덕에 나았소 라는 감사의 말을, 일전에 못드렸던 침값은 계란으로 대신하겠다는 염치의 말을 들으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제가 잘 다니던 은행 책상을 덮고 나온 제 두 번째 삶이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이러한 삶이 치열함을 갖기 못했다고 하여 열정이 없다고 하여 비난 받아도 좋습니다. 단지 이러한 제 삶의 자세가 무기력한 삶에 대한 자기 변명에 다름 아니면 어쩌나 저어할 뿐입니다.
문득 싸이월드 뒤지다가 일기장에 씌여진 그때 당시 레포트글.
그냥 지워버리긴 아까워 옮겨둔다.